
[한국대학신문 백두산 기자] 소규모 대학의 절멸(絶滅) 위기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학령인구 급감 시대에 대학의 생존을 가르는 잣대인 대학기관평가인증 제도가 4주기(2026년 시행)를 맞아서도 여전히 대학 규모와 특수성을 외면한 채 획일적인 ‘숫자’ 경쟁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총회에서 소규모 대학 지원 TF는 현행 평가 체계가 소규모 대학에 불이익을 주고 있음을 강력하게 지적하며, 재학생 충원율 등 핵심 정량 지표의 기준값을 규모별로 차등 적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월 발표한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평가원의 4주기 평가 기준은 3주기와 거의 동일한 기조를 유지하며 소규모 대학의 현실을 반영하는 데 실패했다는 비판이 고등교육계를 강타하고 있다.
실제로 4주기 대학기관평가인증의 주요 양적 준거를 살펴보면, 전임교원 확보율(64%), 직원 1인당 학생 수(70명 이하), 장학금 비율(12% 이상) 등 핵심 지표가 대학의 규모와 관계없이 동일한 비율로 설정돼 있다.
특히, 교원 1인당 연구비(1,000천 원/500천 원)나 재학생 1인당 강의실/실습실 면적(1.2㎡/2.5㎡)과 같은 재정 투입 지표는 ‘1인당’ 수치임에도 불구하고, 대학 총 재정 규모가 제한적인 소규모 대학에게는 중·대규모 대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무거운 절대적 재정 지출 부담으로 작용한다.
소규모 대학 지원 TF장인 최대해 대신대 총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4주기나 3주기나 거의 동일하게 가고 있다. 소규모 대학은 모든 게 다 벅차다”며 “우리(TF)는 재학생 충원율 등의 기준값에 대해 지방 소재 대학은 10%, 소규모 대학은 20% 내외의 조정(80% 수준 적용)이 필요하다고 요구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현행대로라면 소규모 대학은 이 ‘숫자 장벽’을 넘기 위해 대학의 고유한 특성까지 희생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 평가 낙인 국가장학금 연계, 학생 1인당 지원 격차까지 ‘교육 차별’ = 더욱 심각한 문제는 현행 평가 시스템의 실패가 대학의 폐교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교육권 차별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본지가 입수한 소규모 대학 지원 TF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십여 년간 폐교된 대학은 모두 소규모 대학이었다. 이는 단순히 시장 경쟁에 따른 자연스러운 도태가 아닌, 획일적인 평가 잣대에 의한 정책적 ‘절멸’이라는 것이 TF의 분석이다. 이처럼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거나 미인증 대학으로 분류되는 순간, ‘평가 낙인’은 학생들에게 곧바로 전가된다.
가장 치명적인 연결고리는 대학기관평가인증 여부를 국가장학금 지급과 연계하는 현행 제도다. 최 총장은 이에 대해 “평가가 떨어지면 당장 그 다음에라도 보완해서 할 수 있도록 하면 되는데, (국가장학금과) 일정 기간을 연관시키니까 결국은 그 학교는 그 수치 몇 개 때문에 국가 장학금을 못 받게 되면 학교는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장학금 수혜를 놓치는 것 외에도, 소규모 대학 학생들은 재정지원사업에서부터 대규모 대학 학생들과 심각한 격차를 겪고 있다. 2021년 기준, 대규모 대학 재학생 1인당 수혜 금액은 158만 3568원이었던 반면, 소규모 대학은 90만 6635원에 불과해 약 67만 원 이상의 격차가 발생했다. 이는 대규모 대학 수혜액의 57.3% 수준에 머무르는 수치이며, 그 격차는 해마다 커지고 있다. TF는 이 문제가 “고등교육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던지는 심각한 문제”라고 규정했다.
TF는 지방 소규모 대학의 충원율이 2022년 76% 수준까지 하락(4년 전 대비 10%p 이상 급락)한 상황에서 이러한 정책적 차별이 계속된다면, 2040년에는 1천 명 미만 소규모 대학의 등록금 수입 감소율이 무려 –60.9%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면서 “대학의 위기는 곧 지역 경제 침체와 소멸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이는 남원 등 폐교 대학 소재지에서 이미 검증된 재앙적 결과”라고 강조했다.

■ 생존 담보할 ‘경상비 법제화’, 특성화 전용 트랙으로 정책 전환 시급 = 소규모 대학의 위기를 돌파하고 고등교육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시장 논리’에만 맡겨둬서는 안 되며, 획기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 TF의 일관된 주장이다.
최 총장은 “소규모 대학이기 때문에 특성화에 더 빨리 적응할 수도 있다”며 “대규모 대학은 의견 수렴하고 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소규모 대학은 오히려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AI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다양성과 유연성이라는 소규모 대학의 강점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지적이다.
이러한 소규모 대학의 생존과 특성화를 보장하기 위해 TF는 범정부 차원의 과감한 지원을 요구했다. 먼저, 국립대와 달리 사립대(소규모 대학의 대부분)는 인건비, 운영비 등 경상비 지원을 받지 못해 재정난이 심각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일본의 사례를 참고하여 경상비 지원의 법적 근거를 조속히 마련하고 이를 소규모 대학부터 우선적으로 시행해 최소한의 교육 여건을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기존의 RISE 체계가 지역전략산업(첨단 분야 중심) 연계만을 강조해 종교, 예술, 인성 등 보편적 가치 교육에 특화된 소규모 대학의 역할을 담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할 것을 촉구했다. 이를 위해 정부에 ‘중소대학 기본법’ 또는 이에 준하는 별도의 법제화를 통해 중소대학에만 전용할 수 있는 재정지원 트랙 구축을 요청했다.
이와 함께 중·대규모 대학과의 경쟁에서 균형추를 맞추기 위한 규제 개혁 ‘우선권’ 배정도 주장했다. 평생교육, 원격교육, 정원 외 학생 모집 등 입학자원 확보와 직결된 규제 개혁에 대해 소규모 대학에 최소 2~3년간 우선권을 부여함으로써, 부족한 자원과 낮은 지명도에도 불구하고 자율적인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최 총장은 “눈으로 보이는 가시적인 효과만 드러내지 말고 눈으로 보이지 않는 AI 시대에 숨겨져 있는 정말 그런 달란트를 소규모 대학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며 “성실하게 교육의 본질을 지키는 대학은 시장 논리가 아닌 정책적 배려를 통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정부와 고등교육계에 소규모 대학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전문출처: 4주기 평가도 ‘획일적 잣대’ 고수… 소멸 위기 소규모 대학 “생존권 박탈” 아우성 < 리포트 < 이슈·기획 < 기사본문 - 한국대학신문 - 411개 대학을 연결하는 '힘'

